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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 저

 

부제: ‘시치미를 떼다’는 매의 꼬리에서 태어나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 같은 말이다

 

시치미를 떼다’는 매의 꼬리에서 태어나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 같은 말

 

우리는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시치미를 떼다”라는 말을 꺼내 든다. 분명히 어떤 일을 해놓고도 모르는 척할 때, 책임을 회피하거나 사실을 감추려 할 때, 이 표현은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그러나 이 익숙한 말 한마디 속에 깃들어 있는 시간의 깊이와 문화의 흔적을 떠올려 본 적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단순한 관용 표현이 아니라, 한 시대의 생활 방식과 인간의 본성을 고스란히 품고 오늘까지 살아남은, 살아 있는 언어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시치미’라는 말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그 시작은 조선 시대의 매사냥 문화에 닿아 있다. 당시 매는 단순한 사냥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분과 재력을 상징하는 귀중한 재산이었고, 때로는 한 집안의 위세를 드러내는 존재이기도 했다. 매 한 마리를 기르고 훈련시키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으며, 좋은 매는 그 가치가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그러니 자연히 매를 잃어버리는 일은 단순한 분실이 아니라 재산상의 큰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매의 꼬리에 작은 표식을 달아 두었다. 그것이 바로 ‘시치미’였다. 시치미는 깃털이나 금속 조각 등으로 만들어졌고, 집안마다 모양과 색이 달라 일종의 식별표 역할을 했다. 오늘날로 치면 이름표이자 신분증이며, 더 나아가 고유의 식별 코드와 같은 기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하늘을 가르는 매의 날갯짓 속에서도 그 작은 표식 하나는 주인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근거였다.

 

하지만 아무리 정교한 장치라도 인간의 욕망과 맞닿는 순간, 그 의미는 쉽게 뒤틀리기 마련이다. 매사냥이 활발하던 시절, 매를 둘러싼 분쟁과 도난은 끊이지 않았다. 사냥 도중 매가 멀리 날아가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기도 했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매를 훔치는 일도 발생했다. 이때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행동이 바로 시치미를 떼어내는 일이었다. 꼬리에 달린 표식만 없애버리면, 그 매가 누구의 것인지 입증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태도는 지금 우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알고 있는 모습이다. 태연한 얼굴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이건 내 매다”라고 말하는 것. 자신의 행동을 감추기 위해 증거를 제거하고, 사실을 부정하는 그 순간의 심리가 바로 ‘시치미를 떼다’라는 말 속에 응축되어 있다. 결국 이 표현은 단순히 물리적인 행위를 가리키는 것을 넘어, 인간이 책임을 회피하고 진실을 외면하려는 내면의 태도를 상징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말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비유적인 의미로 확장되었다. 더 이상 매나 사냥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졌지만, 사람들의 삶 속에서는 오히려 더 널리 쓰이게 되었다. 누군가 분명히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끝까지 부인할 때, 혹은 명백한 사실 앞에서도 모르는 척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치미를 뗀다”라고 표현한다. 이 말 속에는 단순한 비난을 넘어, 인간의 얄팍한 변명과 뻔뻔함을 꿰뚫어 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표현이 단순히 부정적인 의미만을 담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때로는 가벼운 농담이나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사용되며, 상대의 행동을 유쾌하게 꼬집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는 한국어가 지닌 특유의 정서, 즉 직설적인 비판보다는 완곡한 표현 속에 의미를 담아 전달하는 문화적 성향과도 맞닿아 있다. 말 한마디로 상황을 부드럽게 만들면서도,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결국 “시치미를 떼다”라는 말은 한 마리 매의 꼬리에 달린 작은 표식에서 시작되어,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관계를 설명하는 언어로까지 확장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어휘가 아니라, 역사와 생활,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상징이다. 우리는 이 말을 사용할 때마다, 의식하지 못한 채 과거의 한 장면을 현재로 불러오고 있는 셈이다.

 

말은 흔히 사라진 것들의 흔적이라고 한다. 기록되지 않은 일상,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 그리고 그들이 겪었던 갈등과 선택이 언어 속에 남아 오늘까지 이어진다. “시치미를 떼다”라는 표현 역시 그러하다. 그것은 도둑맞은 매를 둘러싼 작은 사건에서 비롯되었지만, 결국 인간이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담아내며 살아남았다.

 

우리가 쓰는 단어 하나, 표현 하나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속에는 시간의 켜가 쌓여 있고, 삶의 흔적이 스며 있으며, 인간을 이해하려는 오래된 시선이 담겨 있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말 속에 담긴 역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치미를 떼다”라는 이 짧은 표현은, 그렇게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그리고 그 숨김 속에는 어떤 인간의 얼굴이 드러나고 있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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