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민지, 그녀의 고요한 방 2화

작가들 2025. 4. 23. 15:57

조용한 일상에 안주하던 민지에게, 성혁이라는 사람의 따뜻한 관심이 다가옵니다. 처음엔 서툴고 어색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열리기 시작하죠. 혼자만의 방에서 세상과 연결되는 길을 찾아가는 민지의 용기 있는 한 걸음을 따라가 보세요.

오늘은 어쩐지 조금 달랐다. 거울 앞에 선 민지는 자신의 눈빛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는 걸 느꼈다 — 거울 앞에 선 민지는 자신의 눈빛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는 걸 느꼈다

1화 바로가기 👉

민지, 그녀의 고요한 방 2화

민지는 오늘도 어김없이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 창밖은 어슴푸레했고,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햇살이 방 안에 가늘게 드리워져 있었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책상, 창가에 늘어선 초록빛 화분들, 그리고 따뜻한 색감의 액자가 걸린 벽. 이곳은 변함없이 조용하고, 한결같았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지 조금 달랐다. 거울 앞에 선 민지는 자신의 눈빛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는 걸 느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무심하게 화장을 마치고 나왔을 텐데, 오늘은 립스틱 색도 조금 더 밝은 걸 골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다.

지하철 안,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민지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눈가에 머무는 햇살이 살짝 번졌다. ‘나… 뭔가 달라진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말이 많지 않고, 어딘가 어색한 자리에선 긴장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마음이 덜 무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회사의 풍경도 여전히 다를 건 없었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바쁘게 돌아가는 회의,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웃으며 대화하는 동료들. 예전 같았으면 그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이메일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했을 민지였지만, 오늘은 커피 머신 앞에서 마주친 동료에게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 작은 인사에 상대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돌려주었다. “어? 민지 씨, 오늘 기분 좋아 보여요!” 그 말에 민지는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간단한 대화가 이토록 따뜻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왜 몰랐을까.

점심시간, 성혁이 다가왔다.

“민지 씨, 오늘은 우리 둘이 밥 먹을래요? 근처에 괜찮은 덮밥집 생겼는데.” 민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같았으면 회피했을 제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식당에서 마주 앉은 테이블 너머로 성혁은 웃으며 말했다.

“요즘 민지 씨 분위기 좀 달라진 거 알아요? 예전보다 눈빛이 부드러워졌다고 할까. 그냥 느낌이에요.” 민지는 순간 당황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이 마음속에 작은 기쁨으로 스며들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보일 수 있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그동안 투명인간처럼 살아왔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는데, 그 말 한마디가 자신을 존재감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기분이었다.

며칠 후, 성혁은 회사 근처의 작은 사진 전시회를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민지 씨 사진 좋아하잖아요. 예전에 책상에 풍경 사진 붙여놨던 거 기억나요. 이 작가가 그런 감성 있거든요.” 민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공간, 낯선 경험이 조금은 무섭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가보고 싶었다.

전시회는 조용하고, 공간 전체가 부드러운 음악과 감성적인 사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민지는 오래도록 한 장의 사진 앞에 멈춰 섰다. 흐린 하늘 아래 홀로 선 나무 한 그루. 바람에 휘어진 듯한 나뭇가지, 약간 기울어진 그림자. 어딘가 외롭고도 단단한 느낌. 그것은 어쩌면, 지금까지의 자신일지도 몰랐다.

“저 나무, 민지 씨 닮았네요.”

옆에 선 성혁이 말했다.

“조용하지만… 뿌리가 깊은 그런 느낌이요. 혼자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나무.” 그 말은 민지의 마음을 찡하게 울렸다. 그는 가볍게 던진 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속에는 민지가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전시회를 나선 후, 두 사람은 근처의 조용한 공원을 걸었다. 바람이 살짝 불고, 벚꽃이 흩날리기 시작하던 봄의 저녁. 성혁은 잠시 멈춰 서더니 민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은요… 민지 씨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어요. 조용하지만 깊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거든요.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어요.” 민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기쁨과 두려움, 기대와 혼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마음속에 열리지 않았던 문이 이제 막 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문을 완전히 넘어서기엔 아직 너무 많은 감정들이 걸려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그날 밤, 민지는 조용한 방에 앉아 오래도록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일기장을 펼쳤고, 손가락 사이에서 펜이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아직도 조용한 걸 좋아해. 혼자 있는 시간도 소중해.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해.

나라는 사람도…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일지도 몰라.”

그리고는 창가에 물을 주었다. 조용한 그녀의 방은 여전히 따뜻했고,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민지의 세계는 조금 더 넓어져 있었다.

방 밖으로는 봄바람이 불고 있었다. 민지의 마음에도, 그 봄바람은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1화 바로 가기 👉